좋은 재능을 가진 자야새흥(S.Zayasaikhan)

15 최소 읽기 · Aug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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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능을 가진 자야새흥(S.Zayasaikhan)

오늘날의 몽골 예술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예술은 예술가의 삶과 관습을 반영하여 몽골의 역사를 전할 것인가? 아니면 몽골의 고대 예술과 연결될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유럽 및 미국의 현대 미술 예술과도 연결될 것입니까? 이 질문들을 예술가 자야새흥(S.Zayasaikhan)의 작품에서 우리가 볼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야(Zaya)로 알려진 자야새흥은(S.Zayasayhan)은 1975년에 몽골의 남쪽 국경에 위치한 울란바토르에서 625km떠러진 사막지에서 멀지 않은 산지와 사막지가 결합된 곳인 바양헝거 아이막의 밭차강 솜에서 다섯명의 자녀를 둔 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야 외에는 형 2명이 있고 남동생 여동생이 1명씩 있습니다. 그의 추억 속에서 어렸을적에 살았던 곳은 100가정 정도로 구성된, 박물관이나 예술 학교는 전혀 없고, 전기도 연결되지 않은, 정보를 접할 기회는 매우 적은 그러한 곳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바아차강 솜에 있었던 집에는 그 솜의 도서관보다 더 많은 책이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항상 책을 읽었고 그것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자야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방학 동안에는 보통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책을 읽었답니다. 자야가 “나는 1,2학년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 한것 같아요. 당시에는 스스로 자유롭게 그리지는 못하고 모방을 해서 그렸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그리고 유명한 작가 푸쉬킨의 그림과 그들의 한 말이 적혀있는 공상주의 시대의 선전 서적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모방해서 그렸었습니다. 촛불의 빛에 비춰서 말입니다. 아버님이 많이 격려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그림 중에서 몇개를 제가 갖고 있어요”라며 추억을 나누곤 했습니다.

자야가 2002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몽골을 떠나 미국으로 처음으로 갔습니다. 운이 좋게도 여러 입국권으로 관광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그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르켜준 현대 미술을 보기 위해 피카소의 호랑이 판화 원본 전시회에가 열린 갤러리에 가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야는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건너편에 있는 소살리토(Sausalito) 시에 있는 한 갤러리를 알게 되고 거기 사람들을 알게 되자 갤러리 또한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갤러리에 보여준 작품 중 일부는 그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 그린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 갤러리는 그의 그림 중 두개를 팔고 나서 여성이 등장하는 두 작품을 추가로 요청했었습니다. 자야 작품에서 일반적으로 묘사하는 영웅들을 제거하고 여성들만 포함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후로는 지금까지 자야는 남성 영웅들보다 몽골 여성을 여전히 더 묘사하고 있죠.

미국과 유럽을 방문하고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대륙을 가로질러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의 문화에 뿌리를 둔 예술 형식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배워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야는 몽골인의 특성과 독특함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화와 결합된 문화의 혼성화를 작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자야가 자기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일본인 여성을 만났고 그 이후로 그녀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델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느 일본에서 다년간 일하며 생활하면서 외국인의 눈으로 그들의 문화와 예술을 관찰하면서 몽골의 본성과 독특함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었습니다.

자야는 자신의 작품에서 몽골의 정체성과 몽골 문화의 혼종성을 어떻게 분석하고 표현했는가?

제 생각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표현되는 Leitmotif(라이트모티프) 주제와 동기는 음악의 형태로,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개념에서 온 것입니다.

즉 자야의 작품 주제는 옛날부터 항상 음악이었다는 것의 예가 바로 그가 14살에 만든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신의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그는 16살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따서 Stairway to Heaven(천국의 계단) 작품을1991년에 그렸고, 1년 후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사망했을 때 Miss HIV(미스 히브)를 그에게 헌정지었습니다. 그후에는 대학 논문을Sound of the Steppe(초원의 소리)으로 이름을 치은 것이 그가 음악에 중요성을 얼마나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1995년에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몽골의 전통 그림을 모사했습니다. 또한 2004년 작품 Hunters(사냥꾼들)에서 현악 악기들을 묘사한것이 이후에 음악 관련 작업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2006 년 Ancient Song(고대 노래) 그림에서 여성 음악가들을 묘사했고 2008년 The Golden Palace (황금 궁전)에는 궁전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씩으로 표현했었습니다. 음악으로 비유를 만들어서 표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야만의 의식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이 마음과 심리로 음악을 깊이 느끼듯, 자야도 음악을 깊이 느끼고 반응합니다. 자야에게 제가 작품에 악기를 자주 그리는 이유를 물었을 때 누군가 자기에게 “왜 항상 여성을 그리냐고?” 물었던 질문과 연결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 더이상 다른 남자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요 라고 그때 제가 답 했어요. 그리고 우리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배우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악기가 그들에게 배우자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라며 답을 주었었습니다.

Gail Levin
“Mongolia, Lost and Found”